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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

배경

통일신라 말 처음으로 운주(지금의 홍성일대)라는 지명이 사료상에 나타남과 더불어, 고려건국 이후 운주에서 왕건과 싸워 패한 긍준의 세력과 왕건의 후비 홍복원부인 홍씨의 아버지인 홍규의 존재는 나말여초 홍성지역에 독자적 세력을 형성한 호족이 대두하고 있었음을 시사(공주대학교 박물관장 윤용혁 교수-긍준과 홍규는 동일인물로 추정)

홍성지역-후백제시대의 초기의 배경:후백제의 영역 안에 포함되어 견훤과 궁예의 치열한 세력경쟁속에서 점이지대에 위치하여 대립과 연합을 반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궁예가 군사력을 강화시켜 남하하자 웅주를 지키던 후백제의 장군 홍기는 자진하여 투항하였고(904년), 이는 주변지역에 영향을 미쳐 홍성지역도 후고구려와 연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궁예가 왕건에게 축출되고 후고구려의 영향력이 소원해진 틈을 타 홍성지역을 비롯한 주변의 10여주.현은 고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917년), 후백제와의 연합을 도모하였다(고려사, 태조 원년 8월).

그 결과 홍성은 934년까지 약 17년 동안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다.

예컨대 고려의 대상 홍유(남양홍씨의 시조)에 의해 유민 500여호가 모집되고(고려사, 태조 2년 8월), 임존성이 공략되어 3,000여명이 죽었으며(고려사, 태조 8년 10월), 927년 운주가 공략되어 성주 긍준이 격파되었다(고려사, 태조 10년 3월).

결국 홍성지역은 태조의 운주 정벌군과 견훤의 5천 군사가 운주에서 격돌하면서 견훤군 3천여명이 격파된 후 웅진이북 30여성의 항복을 받아냈다(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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