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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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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천년의 시간과 마주하는 열여섯번째 이야기 믿음을 지키다. 홍성의 천주교

  • 근민당
  • 감옥터
  • 홍주진영 (경사당)
  • 저잣거리
  • 참수터
  • 생매장터
순례길 안내판
순례길안내판
안회당 외부
안회당외부
참수 순교터
참수순교터
생매장터
생매장터

01 홍주성지 특징

홍주성지는 212명의 천주교인들이 희생된 순교성지입니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가지 포함하면 7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내포지역에 순교자가 많았던 이유는 홍주목을 관장하던 홍주목사와 군사의 중심지인 진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해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희생된 홍주성지에는 3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충청도에서 첫 순교자가 나온 곳(원시장 베드로)이며, 둘째,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212명), 셋째, 증거터와 순교터, 생매장터 등 여러 형태의 처형장이 있는 곳입니다.

02 홍주성지 6곳

  • 근민당(동헌, 현재의 안회당)
    • 홍주목사가 근무하던 근민당에서 조선시대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과 문초를 받았습니다. 많은 고문과 회유로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면서도 천주교 신자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그로 인하여 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 감옥터
    •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홍주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였으며 형구틀에서 고문을 당하다 17명이나 죽었습니다. 홍주 감옥에서는 113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습니다. 2014년 홍성에서는 4명의 복자가 시복되었는데, 그 중 3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64세였던 복자 원시장 베드로는 박해가 시작되자 스스로 순교를 자청하여 1793년 1월 28일 굵은 밧줄로 묶인 채 알몸으로 얼어 죽음으로써 홍주에서 처음으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 홍주진영(경사당)
    • 홍주진영은 오늘날 군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내포지역에서 붙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은 경사당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끝까지 천주를 믿는다고 하는 자는 ‘사학죄인’이란 죄명을 붙여 목사 앞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로 고문을 받았습니다.
    • 박취득(라우렌시오)은 곤장을 1천4백대나 맞으며 견디다가 1799년 4월 3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갓난 아이였던 아들 박후재 요한은 1839년 기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참수됨으로써 성인에 올랐습니다.
  • 저잣거리
    • 저잣거리란 옛날 장터입니다. 관아에서는 죄질이 아주 나쁜 흉악범들과 천주교 신자들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저잣거리로 끌고 와 아버지나 임금을 죽인 대역 죄인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하며 심하게 봉변을 주었습니다.
  • 참수터
    •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변에 죄인을 처형하던 참수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신유박해 때 황일광 시몬과, 병인박해 때 유 마르타가 참수된 곳입니다. 홍주에서 태어난 황일광은 백정이었습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그가 우연히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1802년 1월 30일 45세의 나이로 참수되었습니다.
  • 생매장터
    • 생매장터는 병인박해 때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 루시아, 김조이 마리아, 원 아나다시아 등이 생매장당한 곳입니다. 이들은 모두 홍주 원머리(현 당진시 신평면)출신으로 친척지간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날 체포되어 이곳에서 생매장되었습니다.
    • 병인박해는 8천여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던 가장 큰 박해입니다. 감옥소마다 천주교 신자들로 넘쳐났고, 나라에서는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선참후계령을 내려, 천주교 신자들은 먼저 처형시키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홍성천과 월계천이 만나는 이곳에 커다랗게 구덩이를 파 놓고 한꺼번에 생매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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