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민택기 전시 서문
숲은 / 나에게 마음의 안식처 따위의 것만은 아니었다. 빽빽한 나무와 숨 막히는 초록은 폐쇄 병동의 초점 없는 흰 벽과 같았다. 거기다 파드득, 하고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면 순간적인 두려움에 압도당해 몸은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다행히도 그게 들짐승이 아닌 새 같은 자유로운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나의 모든 감각은 날아가는 그것을 끊임없이 뒤쫓았다. 나를 데려가 줘, 하든 지 나도 날고 싶어,라는 유아적 언어를 마구 내 뱉으며 가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땅은 / 흙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시의 땅에 있던 흙은 본래의 흙이 아닌 붉은 먼지일 뿐 이곳의 그것은 생명 그 자체다. 풀, 들, 꽃과 같은 사람이 지은 이름 같은 고루한 것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바다와 같이 넓고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생명들. 나처럼 비루한 존재가 함부로 밟고 넘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이미 발밑에 있던 이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내 시선은 아래로 향해 가장 낮은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엔 그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우주를 보았다. 새는 / 자기가 떠났던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 위에 살포시 앉은 그 순간을 나는 목격했다. 나무는 머리 숙여 존경의 표시를 하듯 가지를 아래로 내렸고 동시에 그도 감사의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긴 여정에 피곤한 듯 나무에 몸을 맡겨 머리를 날개에 파묻었다. 나무는 그냥 가만히 옆에 서 있었고 아무 조건 없이 과거가 아닌 지금의 그로 받아주었다.
나는 / 지나간다. 나에게 스민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8년간 내 에포케 상태를 존중하면서 선험적 경험을 방패 삼아 차가운 시공간에서 싸웠던 여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파이터의 직무를 등에 단단히 동여매고 동굴 같던 숲을 터널 삼아 세상 반대편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자유롭게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소금기 많은 바닷물에 온몸을 던질 것이다. ● 숲속의 파이터는 / 침묵의 숲을 지나 / 바다와 같은 숲으로 ■민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