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김제원〈The Third Spaces〉전시 서문
미술평론가 이양헌
한 장소가 보존하고 있는 과거의 시간과 이야기를 어떻게 복원되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무엇을 통해서인가. 아마도 과거를 표지하고 있는 사물과 건축들. 한 장소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견딘 이들은 사건의 목격자로서 지난 과거를 현재화하고 지금 여기에서 빛나고 있다.
〈The Third Spaces〉는 김제원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지난 5년간의 여정이 담고 있다. 뉴욕주에 위치한 오래된 공업도시인 유티카와 도쿄의 몇몇 레시던시에 거주하며 보여준 작업에서 그는 지역의 기억을 모으는 일종의 수집가처럼 보인다. 과거의 건축물에서 파편을 모아 쌓아 올린 일시적인 기념비는 특정한 지역의 정체성을 증언하는 동시에 역사가 이미지로 어떻게 현시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되기도 하다. 특히 버려진 집의 파편이나 오래된 건축적 요소로 구성된 오브제는 더 이상 교환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 발화하는 ‘쇠퇴한 사물’처럼 보인다.
2018년 교토아트센터 레지던시에서 보여준 작품은 건축의 지표적 흔적을 통해 과거와 이어졌던 초기작을 지나 2018년 교토아트센터 레지던시에서 보여준 작품은 보다 추상적인 차원으로 변화하는 분기점이 된다.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이자 시노그라피처럼 보이는 작품은지역과 시크릿 페이퍼에 대한 두 개의 영상과 현지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다양한 사료를 엮은 하이퍼 링크처럼 읽히기도 하고 한일 교류사를 가시화하는 역사의 다면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물에 대한 모티프는 우물이자 바다, 포탈로 이어지며 지역의 다시간적 차원을 표면화해낸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에서 선보인 작업, <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 역시 서로 다른 시간을 연결하고 사라진 마을을 상상하게 하는 시간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새로운 마을이 생기기 이전에 시간을 보존하고 있는 노부부의 집에서 작가는 건축의 가장 오래된 소재 중 하나인 타일을 캔버스삼아 지역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새겨 넣었다. 켜켜이 쌓아 올린 드로잉은 마을의 시간적 구조를 유비하고 있기도 하고 작가가 노부부의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듯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시간의 지층 속에 가려진 존재를 향해 길을 내는 일종의 지도에 다름 아니다.
거대한 타일 작업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고 잊힌 장소와 접속할 수 있는 일종의 우물일까. 작가는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하는 우물의 이미지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떠올렸다고 말한다. 소설은 사라진 아내를 찾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작가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일까. 노스텔지어거나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빛나지는 않지만, 망각에 저항하며 기억되는 존재는 분명히 빛나고 있다는 것. 거대한 타일이자 지도이자 우물 앞에서 우리는 망각과 기억 사이를 횡단하는 빛의 궤적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