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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주성역사관

행복이 가득한 지금 홍성은?

소개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사상가인 한용운(1879~1944)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한용운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청주이며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입니다.

집안은 양반의 기품과 의기를 지닌 선비의 가문으로, 한용운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습니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였습니다. 경학에 힘쓴 결과 1910년 32세의 나이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침체된 한국 불교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논리정연하게 기술하였습니다.

1911년 일본이 이른바 한일불교동맹을 내세우며 한국 불교를 사실상 일본에 귀속시키려하자 선생은 이에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총독부의 조선사찰령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고, 만주의 독립지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을 만나 독립운동을 협의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귀국 후 언론 활동을 통하여 3·1운동을 주도하였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하였습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를 주도하였으며, 신간회의 서울 지회장으로서 학생 의거와 민족 운동을 지원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민족독립·불교유신·자유문학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節義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저서로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등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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