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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주성역사관

행복이 가득한 지금 홍성은?

소개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청산리전투의 영웅 김좌진(1889~1930) 장군이 태어나 성장하였던 곳입니다.

김좌진 장군은 1889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입니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호방하고 영민하였으며, 김광호·김동익·김복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민족수호 정신을 함양하였습니다. 18세 때에는 이미 호명학교湖明學敎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1910년대 대표적인 국내 비밀결사 단체였던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일제의 탄압으로 조직이 와해된 이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준비하였습니다. 1918년 3·1운동의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민족지도자와 함께 서명하였으며, 1919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사령관으로 추대되어 독립전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마침내 1920년 10월 청산리 일대에서 약 10일간 9차례 일본군을 격퇴하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1925년에는 김혁, 최호, 나중소 등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으며, 1929년에는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여 재만 동포의 교육과 민생 안정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항일 세력과 연합하여 대일 항전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1930년 1월 24일 북만주 중동철도선 산시역 부근 정미소에서 동지였던 박상실의 흉탄에 순절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는 1991년부터 성역화사업을 추진하여, 터만 남아 있던 생가를 복원하고 백야 김좌진 장군 전시관을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김좌진 장군의 사당인 백야사白冶祠를 건립하여 김좌진 장군 전승기념 백야축제가 열리는 10월 2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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