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8대 현종9년에 홍주에 속해서 조선 초기엔 홍주군에 속했으며 조선 말기엔 홍주군 고남 상도면의 지역으로서 갈미의 위쪽 마을이 됨으로 윗말 또는 상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노하, 하리, 상촌 일부를 병합하여 상촌리라 해서 고도면이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1일 면 명칭 개칭으로 상촌리라 부른다.
조선 말기 홍주군 고남 상도면의 지역으로서 상촌리의 갈미 안쪽이 됨으로 안갈미 내갈산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증산리, 내갈리, 다산리 상촌이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갈리라 해서 홍성군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 1일 명칭 개칭에 따라 갈산면 내갈리라 부른다.
조선말기 홍성군 고남 하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동막리, 삼준리, 노상리 일부와 덕산군 라박소면의 복당리, 평리. 내라리의 각 일부와 라박소면의 복당리가 아름답다하여 가곡리라 해서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 1일 명칭개칭에 따라 갈산면 가곡리라 부른다.
조선 말기엔 홍주군 고남하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동촌, 음산리, 후동, 용암리, 쌍천리, 다산리, 신촌의 각 일부와 결성군 화산면 화리, 대야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동산리라 하고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 1일 명칭 개칭에 따라 갈산면 동산리라 부른다.
조선 말기엔 홍주군 고남하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신기리, 행촌, 이동과 고남상도면의 장항리와 결성군 용천면 와리 일부를 병합하여 행촌과 삼불산의 이름을 따서 행산리라하여 홍성군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그 뒤 면명개칭에 따라 갈산면 행산리라 부른다.
백제 때는 우견현에 속했고, 신라 때는 결성현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결성현에 속했다. 조선 때 초엽에는 결성현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결성군 용천면의 지역이었다. 옛날에 기와를 구웠던 마을이라, 와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목과동(木果洞), 와리 및 압곡리(鴨谷里)의 각 일부와 홍주군 고남하도면의 산직리(山直里)를 병합, 와리라 하고, 홍성군 용천면에 편입되었다. 그 뒤에 면명개칭에 따라, 결성면 와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1983년 2월 15일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산면으로 편입되었다.
조선 말기엔 홍주군 고남하도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자라의 머리처럼 생겼으므로 자라머리 또는 오두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장항리, 오두리 각 일부와 해두리, 연두리, 사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오두리라하고 홍성군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그 뒤에 면명개칭에 따라 갈산면 오두리라 부른다.
조선 말기엔 홍주군 고남상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소기리, 산직리 각 일부와 고남하도면의 진죽리, 오두리를 병합하여 부기와 소기의 이름을 따서 부기리라 하여 홍성군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 1일 면명개칭에 따라 갈산면 부기리라 부른다.
운곡리 조선말기에 홍주군 고남상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운정리, 지곡리, 신대리, 방곡리 일부와 고남하도면의 상촌과 해미군 고북면 수한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운정과 방곡의 이름을 따서 운곡리라 하여 홍성군 고도면에 편입되었다가 1942년 10월 1일 면명 개정에 따라 갈산면 운곡리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