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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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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홍주향교

홍주향교
  • 문화재명 홍주향교
  • 종별 충남 기념물
  • 지정일 1997.12.17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충서로1575번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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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소개

홍주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확인되지는 않으며, 조선 태종 8년(1408)과 18년(1420)에 건축,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고려시대의 홍주에는 일찍이 중앙에서 외관이 파견되었고, 공민왕때에는 홍주목으로 승격되었으므로, 향교도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향교의 위치가 홍주의 북쪽 3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현재의 위치로 추측된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홍주향교에는 조선전기에 종6품의 교수가 파견되었고, 조선중기에 제독관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6품의 문관으로 제독관이 파견되었다 한다. 임진왜란 등 몇 차례 큰 재난을 당한 뒤 1924년 대대적으로 중수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홍주향교의 보수내역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인 가능하다. 먼저 1871년(고종 8년)에 향교의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0년에는 동서무와 중삼문이 신설되었다. 1893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14년에는 대성전과 후원이 수선되었으며, 1924년에는 문묘 전부가 보수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8년, 1972년, 1995년에 중개수가 있었다. 낮은 구릉지에 앞에는 명륜당을, 뒤에는 대성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식 배치이다. 좌향은 간좌곤향(艮座坤向)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다. 명륜당 전면 좌우에 있던 동재, 서재는 일제때 훼철되었고 전사청(典祀聽)만 남아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인데 전면 1칸은 툇칸으로 개방하였으며, 경내에는 동무, 서무, 제기고 등이 남아있다. 특히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어둠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 유교 건축의 석물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지방교육기관으로서 제사공간인 문묘(文 廟)와 강화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으로 나누어진다. 고려시대에는 공자를 제사하는 문선왕묘(文宣王廟)를 중심으로 강당인 명륜당을 설치하고 조교라는 교사를 두었다. 향교에서 수학한 후 1차 과거에 합격하면 생원(生員), 진사(進士)의 호칭을 받고 성균관에 가게되며 문과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고종 31년(1894) 과거제도의 폐지로 향교의 교육기능이 쇠퇴되고 문묘에 대한 향사(享祀) 기능이 주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 앞까지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어 다른 구릉지에 배치된 향교보다 여유가 있다. 명륜당 앞에 넓은 마당이 있고 동측에 동재가 배치되어 있다. 대개 동재와 서재는 명륜당 좌우에서 안쪽을 향하여 서로 마주보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인데 여기서는 서재는 없고 동재가 명륜당과 나란히 남서향으로 배치되고 있다. 명륜당 뒤로 구릉지를 조성하여 넓은 대지를 만들고 묘당공간을 두고 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을 뒤로 물려 배치하고 중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서로 마주보며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동무 남측에는 전사청이 있다. 이 향교에서 특징적인 것은 대성전 중정이 다른 곳보다 넓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대성전과 양무 사이 간격은 오히려 좁게 되어 있어서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이 조금 미숙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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