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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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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한용운선생생가지

한용운선생생가지
  • 문화재명 한용운선생생가지
  • 종별 충남 기념물
  • 지정일 1989.12.24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318번길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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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소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한용운(1879~1944)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1992년에 생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사적화하기 위해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생가인 초가 외에 사당 삼문 관리사 화장실 등을 건립하였으며, 주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다. 가옥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초가인데 양 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사용하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둘렀으며 바깥에 흙벽돌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이어 생가 좌측 뒷편에 사당과 삼문을 신축하였으며, 사당 전면에 기존에 있던 건물을 개축하여 관리사로 사용하고 있다. 2007년 10월 19일 만해문학체험관(연건평 1천90㎡)을 개관하였다. 전시실에는 만해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60여점의 유품과 작품 등이 전시되며 시청각 영상시설에서는 7종류의 영상도 상영된다. 실외 전시로 민족시비공원이 있다. 군 관계자는 “한용운 선사의 민족 자주독립 정신과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후손들에게 조국 사랑과 민족자존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특히 청소년들에게 생생한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용운선생은 고종 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골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한용운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계명은 봉완(奉玩), 불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라 한다. 7세 때 홍성 남문동으로 이사,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여 경학의 대가로 명승강사가 되었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을 반대철폐운동을 하였고, 1911년 조선사찰령이 내려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지사(志士)들을 만나서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913년〈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출간하여 불교계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1919년 1월 최린(崔麟) 오세창(吳世昌) 등과 상의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할 것을 결의하니 이것이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으며,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하였다.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일제에 대항하는 단체였던 신간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는데, 이 신간회는 후에 학생 의거와 전국적인 민족 운동으로 전개되고 추진되었다. 선생은 민족독립 불교유신 자유문학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節義)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 28일(음 5월 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壯)에서 별세하였다.저서로 『님의침묵』,『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등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만해문학체험관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5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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