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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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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천년의 시간과 마주하는 열다섯번째 이야기 그들의 피는 슬프지만 성스럽다

  • 안회당
  • 옥사
  • 홍주의병 기념탑
  • 홍주진영 (진영의 동헌)
  • 저자거리
  • 참수터
  • 생매장터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나뭇잎 이미지

과거는 현재를 만들었지만, 그 과정이 옳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상당히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0조 1항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천주교 순교자 4인에 관한 안내판 이미지

아래 모두 평등하다는 천주교에 많은 백성이 관심을 가졌으나 집권층은 그렇지 않았다. 성리학으로 양반의 정치적 권리를 유지하려 천주교를 탄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홍주 천주교 성지성당 이미지
  • 십자가 이미지
  • 천주교 성물 이미지

홍주성지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가 탄생한 곳이다.

212명이 희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기록에 없는 희생자들까지 포함한다면 1,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 홍주성지를 찾아 순례길을 걷는다.

안회당 이미지1
01안회당(근민당)
안회당의 두 얼굴
안회당 이미지2

이름도 외관도 아름답고 편안한 분위기를 물씬 내뿜고 있는 안회당은 목사가 일을 보던 동헌으로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 천주교신앙증거터 비석 이미지1
  • 천주교신앙증거터 비석 이미지2

당시 천주교를 탄압하며 신자들을 잡아와 이곳에서 끔찍하게 고문했다. 너무도 평화로운 이곳에서 그런 비극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이 건물과 이 공기가 너무도 낯설다.

천주교신앙증거터 비석, 제4계는 부모와 어른과 임금과 관장을 공경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륜이 아니겠습니까? 박취득(라우렌시오)가 1857년 다블뤼 주교의 증거조사과정에서 이미지
천주교술례길11 이정표 이미지

순교를 규정하는 데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실제로 죽임을 당해야 하고, 그 죽임이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초래되어야 하며,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건에 부합하는 순교자가 참 많다. 그들의 굳건한 신앙에의 믿음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신자들을 감동하게 했다.

홍주옥사 외부 이미지1
02홍주옥사
신앙을 증거하다
홍주옥사 외부 이미지2

동그랗게 모든 것을 품을 것처럼 생긴 이곳이 바로 옥터이다.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서면 서늘함이 감도는 감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은 곤장이 있다.

충청도 최초의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가 이곳에서 희생되었다.

  • 홍주옥사 처마 이미지
  • 홍주옥사 비석 이미지
홍주옥사 이미지

신자가 되기 전 베드로는 성격이 괴팍하여 주위 사람들이 무서워했지만, 천주교를 접하고 성격이 온화해지고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랬던 그는 신앙을 이유로 한겨울에 물을 뒤집어쓰고 얼어 죽게 되었다.

홍주읍성 우물터 이미지1
홍주읍성 우물터 이미지2

옥사 바로 옆에는 복원된 우물이 있다. 원시장이 바로 이 우물물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한때에 약물로 유명했던 우물물은 순교자들에게는 고문하는 용도로 쓰였다니 씁쓸하기만 하다. 우물은 마치 그때의 고통을 기억하는 듯 차가워 보인다.

  • 홍주옥사 내부 이미지1
  • 홍주옥사 내부 이미지2
홍주옥사 내부 이미지3

박취득 라우렌시오 또한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곤장을 1,400대나 맞고 8일 동안 물 한 방울도 먹지 못했다.

당연히 죽은 줄로만 알고 옷을 벗겨 밖으로 내던졌는데 살아있었다. 죽지 않는 그가 요술을 부린다며 감옥에서 새끼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

1,400대의 매질을 생각하며 옥 앞의 곤장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신앙증거터 비석 (진영장의 동헌) 이미지
03진영장의 동헌, 저자거리
숭고한 순교정신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을 받는 모습을 나타낸 모형 이미지

조양문 근처에는 ‘진영장의 동헌‘이라고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경사당이라 불렸으며 오늘날 군부대와 같은 곳이었다.

여기에서 내포 지역에서 붙잡혀 온 천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신자들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신앙증거터 비석 (옛저자거리) 이미지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장터인 저잣거리에서도 순교자들이 나왔다. 순교자들이 관아로 끌려가거나 처형되기 전에 조리돌림을 당하는 등 혹한 고문을 당하며 순교하였다.

조양문 앞 큰길 이미지

저잣거리에서는 죄질이 매우 나쁜 흉악범들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온갖 멸시와 함께 고문받는 곳이었는데 천주교 신자들은 이들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역사가 끝이 없이 솟아 나오고 있다.

  • 단풍나무 이미지
  • 하늘을 배경으로한 앙상한 나무들 이미지
비석문구, 지금 죽을 지경에 이르게되었으나, 이미 배운 교리는 참으로 이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빨리 사형을 당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황일광(시몬)이 포도청에서 한 진술 중에서 이미지

순교길은 스산함의 연속이다. 가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순교자들의 슬픈 영혼이 공기에 스며있는 듯 가슴까지 쓰라리게 한다.

참수터로 향하는 걸음마다 마음도 함께 무거워져 간다.

참수순교터 비석 이미지1
04참수터, 생매장터
평화의 빛이 되리라
월계천변 이미지

대교공원 월계천변에 떨어진 낙엽에 둘러싸인 참수순교터가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유명한 순교자는 황일관 시몬이다.

시몬은 천민 출신으로 어디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았으나 천주교 신자가 된 후 교우들과 양반집에서도 평등한 애정을 받게 되었다.

참수순교터 비석 이미지2

대교공원 월계천변에 떨어진 낙엽에 둘러싸인 참수순교터가 있다. 이곳에서 순교한 유명한 순교자는 황일관 시몬이다.

시몬은 천민 출신으로 어디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았으나 천주교 신자가 된 후 교우들과 양반집에서도 평등한 애정을 받게 되었다.

참수순교터 비석, 지금 죽을 지경에 이르게되었으나, 이미 배운 교리는 참으로 이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빨리 사형을 당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황일광(시몬)이 포도청에서 한 진술 중에서 이미지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라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당시 경기도에 이주해 있었으나 신유박해 때 체포되었다. 고향으로 보내 참수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려고 그는 홍주로 이송되어 즉시 참수되었다.

그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다.

  • 생매장 순교터 비석 이미지1
  • 생매장 순교터 비석 이미지2

홍주성지 순례길의 마지막 목적지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생매장터이다.

병인박해 당시 8천여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는데 ‘많은 교우를 한 번에 죽이기 어렵기 때문에’ 생매장시켰다.

홍주순교성지 비석에 적힌 문구, 이 곳 홍주골은 믿음을 지킨 성지로 충청최초 순교자가 승천한 곳 이 숭고한 넋은 평화의 빛이 되리라 이미지

이곳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신자들을 산 채로 묻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아래 그들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

생매장 순교터 이미지
생매장 순교터에 위치한 홍주순교성지 비석 이미지

이곳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신자들을 산 채로 묻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아래 그들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죽었다.

잔디밭 이미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희생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평화의 빛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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