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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이응노의 집

건축 이야기

이응노의 집 전경 이미지

이응노의 집과 풍경의 건축

고암 이응노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홍성 땅에는 고암의 예술혼이라는 켜가 잠재해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터에 이응노의 집을 새로이 지으면서, 이 땅에 깃든 그 켜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 마을 쌍바위골 사람들이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다리를 건너 시골길 따라 이 집에 이르게 됩니다. 숲자락에 은근히 가리운 건물은 농촌 풍경에 그저 어우러지기를 바랍니다. 오래된 지도에 나온대로 구불구불 되돌려 놓은 길을 따라 연밭과 밭두렁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선생의 고향집 그림대로 지은 초가 곁으로 대숲과 채마밭도,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되살렸습니다. 고암 선생이 늘 보던 그 고향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그 풍경은, 우리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담고 있는 고향 풍경이기도 합니다.

전시 공간은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긴 홀에 서로 다른 네 개의 전시실이 이어진 모양입니다. 전시실 사이사이 열린 틈으로 햇빛과 풍경이 드나들며 종일 홀에 결을 드리웁니다. 기념관의 외관은 황토결이 부드럽지만, 안쪽 홀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느껴져 대비를 이룹니다. 이 길은 예술로 난 길이기 이전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근현대사의 질곡 위에 난 길이자, 그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굴절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암 이응노 선생이 그리던 고향 마을, 고암 선생이 걸어갔던 이 길을 걸어오고 지나갈 여러분의 마음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의 켜, 새로운 역사의 켜가 이 땅에서 다시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조성룡, 2011년.
이응노의 집을 설계한 조성룡은 조성룡도시건축 대표이자 성균관대학교 석좌 초빙 교수로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서울시 건축상), 의재미술관(한국건축문화대상), 선유도공원(김수근문화상), 소마미술관 그리고 이응노의 집,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한국건축문화대상)이 있습니다.

  • 이응노의 집 전경 이미지2

    ‘이응노의 집’은 그가 탄생하고 유년을 보냈다는 충남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새로 지은 이응노가 태어나고 살던 집은 홍성읍에서 북서쪽으로 4킬로미터 지점, 주산(主山)인 용봉산 정상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데, 주변의 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용봉산과 오서산이 이루는 거의 정남북 방향의 축을 약간 벗어난 서쪽, 백월산과 철마산이 이루는 정동서 방향의 축으로부터 약간 벗어난 북쪽에 위치한다. ‘이응노의 집’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북쪽으로 홍성의 주산인 용봉산, 멀리 그와 비슷한 각도로 서쪽으로 치우친 북쪽 5킬로미터 지점에는―그 남쪽 자락에 수덕사가 있는―덕숭산, 가까운 남쪽으로는 월산이라고도 불리는 백월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응노의 집’은 대지 면적 2만 596제곱미터, 건축 면적 1,002제곱미터로 전시 홀, 북 카페, 다목적실 등 전시 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초가로 지은 생가, 야외 전시장, 연밭, 산책로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응노 개인을 기리고자 마련된 이 기념 시설은 그 자신이 미술가였기에 기능면에서 전시와 수장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미술관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응노의 집’은 기념관은 물론, 미술관의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 이응노의 집 내부 이미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각(閣), 전(殿), 루(樓)등 여러 다양한 종류와 형식의 건축물로써 인물이나 사상, 사건 등을 기리고 경우에 따라 비(碑), 현판(懸板) 등을 장치하거나 보호하는 건축이 상당히 발달해 왔다. 그러나 물체, 즉 예술적 성격을 지닌 것, 혹은 기념이 될 만한 오브제를 체계적으로 수장, 보관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은 서양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덜, 그리고 늦게 발달하였다.

    미술관, 박물관의 기원은 가깝게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멀리는 로마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양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도 ‘미술관’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좀 더 정확하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현대적인 의미의 ‘미술관’을 목적으로 건축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연대는 19세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하겠지만 시대와 사회에 따라 성격과 구실이 현저히 상이하게 발달했다. 미술관이 탄생한 초기에 왕과 왕족, 부유한 고위 성직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예술품의 폐쇄적 보관과 운영은 현대에 들어와 대중에게 개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국가, 민족, 체제의 자긍심, 우월감 등과 연결된 과시의 도구나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전시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었다. 바람직한 미술관의 모습은 1,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실험적 운영과 개선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근래의 미술관, 기념관은 전시, 수장의 기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기능은 물론이고 사용자가 예견되지 않은 사건과 행사, 그리고 그에 직접 참여하며 행위도 펼칠 수 있는 이른바 이벤트 장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줄 수 있는 20세기 중후반 이후의 세계적이고 역사에 남을 만한 미술관, 전시관을 꼽는다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년)의 뉴욕 소재 구겐하임 미술관, 이오밍 페이(Ieoh Ming Pei)의 워싱턴 소재 내셔널 뮤지엄, 근래에 건립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에스파냐 빌바오 소재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들 수 있다. 이 건축물들은 공간의 연출, 조소성(彫塑性), 문화·역사적 기념비성 등 여러 면에서 빼어난 건축물들로서 그 자체가 관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로 홍성 군민과 ‘이응노의 집’의 경영 주체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미술관들이 지닌 공통의 문제는 압도하는 장관(壯觀)과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더할 나위 없는 빼어난 건축물이 되었지만, 보는 이의 관심이 건축물에 쏠리 게 되고 전시물이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전시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기능의 면에서 훌륭한 전시 건축물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으며, 몇 가지 시각들이―적어도 건축계 내에서는―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공감대와 시각은 대부분 건축가, 건물 의뢰인, 그리고 안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대중들의 욕망 때문에 쉽사리 허물어지곤 한다. 위대하고 장대하며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건축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욕심은 예술품, 기념물 등을 우선으로 고려하기보다는 건축물을 한껏 드러내고 강조하려 한다. 그리하여 건축물은 원래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고 주변의 맥락과도 전혀 관계없는, 건축가, 지역, 단체의 명성을 위한 도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은 긍정적 논의를 적잖이 이끌어 낼 수 있는 흥미로운 대상이 된다.

  • 이응노의 집 내부 이미지2

    조성룡은 건축가로서 다양한 양상의 건축 작품을 창조해 내고 있는데, 그 건축 세계의 여러 특징 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하나는 필요시 의도적으로, 그리고 노련하게 자신과 건축물을 과도히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느껴지는 소박한 외양과 배치, 건물이 들어설 터가 지닌 기존 지형의 적절한 적용, 또는 그 자신이 건축물 안팎에 인공적으로 지형을 조성하면서 연출해 내는 무리 없는 이동 경로는 유연하고 자연스런 공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곤 한다. 그는 기존의 구조물이나 건축물, 자연, 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그 안에 자신의 건축물을 삽입하는 데 뛰어난 기질을 보여 주는데, 소마미술관, 선유도공원, 서울 어린이대공원 내 ‘꿈마루’ 등은 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닌 색다른 장르의 건축물, 혹은 축조물로서 앞서 말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대지의 지형을 잘 이용하고 건물의 존재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동시에 부담없는 완만한 경사로 등으로써 분할된 전시실들을 관람객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레 순차적으로 유도하는 소마미술관, 폐기된 정수장에 자연을 도입함으로써 정수장의 자취를 보존하며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선유도공원, 온갖 군더더기와 구조체를 제거함으로써 한층 더 뛰어난 공간성을 가진 건축물로 탈바꿈시키고, 건축가 자신과 그의 창조물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듯한 ‘꿈마루’에서의 윤리적 자세는 ‘이응노의 집’의 정신적 근간을 이룬다.

  • 이응노의 집 외부 이미지

    규모로 볼 때 중소 규모의 기념관이자 주로 개인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이응노의 집’은, 다양한 전시 기획 프로그램이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대두되는 전시 공간과 수장 공간 확장의 필요성 등의 압박이 낮은 편이다. 그 규모나 기능의 필요성이 비교적 크지는 않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생각할 때 결코 작은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응노의 집’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예술가로서 이응노의 세계, 그의 인격과 예술 세계를 형성하게 된 동기가 되는 아우라 전반을 최대한 이해하도록 돕고 지역 사회의 역사·문화와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건축물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응노의 집’은 단지 홍성에 국한되는 건물이 아니다. 게다가 이응노는 홍성이나 한국만의 예술가가 아니다. 그 자신, 그의 삶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아우름으로써 시공을 엮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공을 초월하는 그의 예술적 힘을 생각할 때 ‘이응노의 집’은 홍성이라는 지역 사회는 물론, 자연스레 국제적인 스케일의 예술적 교감이 이뤄지는 장소로 계획될 수밖에 없었다. ‘이응노의 집’은 강한 역사성의 현장임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문화 생산지로서의 맥을 미래에까지 이을 것을 전제하고 계획되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시공간적 교두보의 몫을 자연스레 맡고 있는 것이다.

  • 이응노의 집 - 삼각형 터

    ‘이응노의 집’에서 조성룡은 언급된 조건들을 건축물에 융축(絨縮)하여 소화시키고 있다. 주건물동(主建物棟)이 앉혀진 삼각형 터는 기념관의 부속동 및 초가와는 소로(小路)로써 분리된다. 평면상 ‘이응노의 집’에서 가장 강하고 주된 부분인, 그리고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었을 로비와 기획 전시실은 정확하게 용봉산과 일월산을 연결하는 축(軸), 즉 북동—남서 방향 축에 배치되었다. 산을 중심으로 배치하는 수법은 숭산 사상(崇山思想), 주역(周易), 풍수(風水), 기(氣) 이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적용되어 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주론을 근본으로 하는 정신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이응노의 집’은 일월산, 용봉산, 태백산맥, 백두산, 그리고 하늘로 이어지는 맥, 즉 말단으로부터 시작하여 한반도의 기의 정점에 이르는 흐름의 염두에 둔 국토적인 스케일, 우주적인 스케일과 연관되고 있는 것이다. 건물 전체의 평면, 연지(蓮池)를 비롯한 대지와 조경 혹은 경관 등은 주동을 기준점으로 계획되었으며, 대지 안에서는 지형과 공간의 성격, 기능 등에 따른 위계와 연출을 파악할 수 있다.

  • 이응노의 집, 조경이 어우러진 외부 전경 이미지

    이런 맥락에서 서양의 개념인 ‘조경’이란 말을 우리의 문화와 아우러 재고하여 볼 필요가 있다. 조경은 독일어로 란트샤프트(Landschaft)라고 하는데, 이 것은 땅이란 뜻의 ‘란트(land)’와 창조 및 배열의 뜻을 지니는 ‘샤펜(schaffen)’이 합성된 조어이다. 같은 게르만어권인 영어에서는 마찬가지 맥락으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쳐(landscape architecture)라고 표현한다. 한편 라틴어 문화권인 이탈리아에서는 페사죠 아르키텍투랄레(pesaggio architecturale), 프랑스에서는 페이사쥬 아르쉬텍튀랄(paysage architectural)이라고 부르는데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건축적 풍경’을 조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서양에서 조경이란 흔히 공원이나 정원을 조성하고 경영, 관리하는 것, 경관을 건축물로써 조성하는 행위 또는 건축물을 건축물로써 장식하고 강조하는 것을 지칭하므로 온 국토까지 대상으로 하는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의 수법, 조성룡의 수법은 ‘랜드스케이핑(landscaping)’의 관념에 오히려 더 가깝고 서양의 수법은 가르텐샤프트 Gartenschaft : 정원-창조) 또는 가든스케이핑(gardenscaping)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에 더해 우리의 조경 방식, 그리고 조성룡의 조경 행위는 우주의 질서를 염두에 두는 까닭에 ‘코스모스케이핑(cosmoscaping)’이라고 불러도 무난할 것이다.

  • 이응노의 집 내부 이미지2

    항간에서는 조성룡의 작품을 합리주의 성격으로 구분하는 것이 주된 시각인 듯하다. 이러한 판단은 조성룡 건축의 평면이나 입면 등에 드러나는 기하학적 형태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상세히 살펴보면 이런 평가는 단순하고 미흡해 보인다.

    ‘이응노의 집’에서 주동은 긴 직사각형의 상자다. 기획 전시실과 로비를 포함하는, 제1축(①)을 형성하는 장방형 평면, 그에 예각으로 만나며 전시홀과 제3전시실으로써 이루어지는 제2의 장방형 평면(②), 그리고 역시 주동에 예각으로 붙은 사무실과 화장실은 미약하게 돌출되지만 제3의 축(③)을 형성한다. 그러나 강한 축을 형성하는 주동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개의 축은 그 성격이 희석되어 건물의 공간내에서는 거의 의식하기가 어렵다. 제2의 축을 형성하는 공간의 외피는 모두 유리로 형성되었고 남쪽 단부에 놓인 4전시실은 주축을 이루는 부분과 만나 제2축 및 그 사이의 공간을 수용하여 거대한 내부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단차를 제외하면 경계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의적으로 무질서하게 던져 놓은 듯한 1·2·4 전시실은 제2축선상의 3전시실과 주된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대 전시홀은 사이 공간으로 변화되어 위계가 전도되고 만다. 창이 없어 폐쇄적인 소전시실들은 공간적으로 독립성이 강하며, 각 공간마다 개별 전시, 그리고 하나로 이어지는 순차적 전시 시나리오를 가능케한다. 공간적으로는 전시실 배치 후 부수적으로 발생된 듯한 느낌을 주는 실제로는 그 반대이지만 중앙의 대전시홀은 약한 단차와 경사로 등을 두어 공간을 구획함과 아울러 유동적인 움직임을 유발하며, 자연 채광으로는 소전시실 사이의 틈으로 인입되는 빛만이 존재한다.

    ‘이응노의 집’에서 빛의 연출은 우리 고유의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서구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로마 시대의 판테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폐쇄적인 공간에 대체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아주 정교하게 위치가 계산된 개구부를 통해 빛을 끌어들인 연출 수법은 정전적(正典的)인 전통의 하나다. 그러나 개구부의 위치, 그리고 그에 따른 빛의 방향과 성상(性狀)을 살펴보면 조성룡의 의도와 연출 효과는 로마의 판테온에서처럼 정전적인 고전주의 방법보다는 의외와 우연성, 드라마틱한 연출이 개입되어 바로크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직으로 뚫린 측창(側窓)으로 들어오는 강한 빛은 마치 해시계의 그림자처럼 바닥에 시간의 궤적을 그리며 이동한다. 소전시실의 벽체들은 그 빛의 그 방향과 조명 시간을 불규칙하게 단속(斷續)하며 빛의 근원을 알 수 없게 만들어 호기심을 돋운다. 강렬한 빛이 인입되는 시간은 장소에 따라 다르며 그 지속 시간이 짧다. 그러므로 대부분 직사광보다는 벽체 등에 반사되거나 약화된 빛이 내부로 들어와 전반적으로 동굴(grotto)처럼 어두운 공간이 조성되고, 태양의 궤적에 따라 이동되는 조명 지점은 장소와 시간에 따른 빛의 상태에 대하여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님으로써 다변적(多變的)이고 색다른 인상과 분위기를 조성한다. 빛은 해시계의 몫을 수행하게 되는데, 해시계에서는 침의 그림자가 시간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이응노의 집’에서는 빛 자체가 시침(時針)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평면에서 공간이 전도되고, 빛의 구실이 전도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창의 기본적인 역할에서도 보인다. 창은 매스처럼 느껴져야 할 소전시실들 사이, 즉 공간 사이의 틈에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틈은 공간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지만 여기선 사이, 혹은 사이 공간이 되며 이 곳은 양면의 벽체들로써 조정되고 형성된다. 다른 한편으로 틈은 외부로 향하는 시선의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 ‘이응노의 집’ 내부에서 나의 눈은 프레임을 구성하는 벽체에 의하여 조정을 받는다. 벽체는 나의 눈에 절대적인 조건과 환경을 부여하므로 눈이 물체에 의해 조정되고 맞추어진다. 곧 나의 눈, 나아가 나의 몸은 건축물에 맞추어지고 동화됨으로써 그것과 하나가 되도록 강요된다.

  • 이응노의 집 외부 전경(자연풍경과 건물)이미지

    동굴처럼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는 불레(Etienne Louis Boullé, 1728~1799년), 르두(Claude-Nicolas Ledoux, 1736~1806년),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서 발견되는 매장 건축(埋藏建築, architecture ensevelie)의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은 건축물 자체가 지형의 연장이 되고 그 내부 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여겨져 감각적으로는 땅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감상적인 연역에 의지하면 물리적 구조체인 벽은 땅의 연장처럼 해석이 가능하고 표면에 씌운 목재, 그리고 석재를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는 대지, 나무, 암석 등을 떠오르게 하여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이것을 외연화(外延化)하면, 땅에서 나무처럼 박스가 솟아 나오는데, 이 박스들은 자원의 상태인 혼돈을 상징하듯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처럼 배치되었다. 그러나 기본이 되는 합리주의적 평면은 엄연히 존재하여 질서를 암시한다. 확고한 질서 체계를 상징하는 주동은 건물 평면의 기준을 제시하며, 방향이 제각각인 소전시실은 독립적인 전시 공간이 될 수 있다. 건물 전체로 본다면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기보다는 자의적이라고 할 만큼 부수적인 평면들이 들러붙어 있는 형국이다. 평면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나타나는 소전시실들은 공간의 흐름을 끊고 이으면서 불연속성을 조성하는 동시에 각각은 완전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독립된 공간성과 장소성을 얻는다.

    이런 배치 수법을 형태적으로 유사한 장 누벨(Jean Nouvel)의 리움(leeum) 등 현대의 서양식 건축물에게서 발견하기보다는 우리 전통 건축에서 발견하는 것이 더 친숙하고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응노의 집’ 옆에 새로 지은 초가를 살펴보면 그 연계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러 공간을 하나의 단일 오브제 안에 포함시켜 내부의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반면 밖으로는 주변과의 대비를 극대화하여 가소성(可塑性)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서양 건축과는 달리 우리 나라 건축의 특징은 단일채의 가소성 자체보다는 주변 환경과의 어우러짐을 꾀하며 각 채와 채 사이의 틈을 통하여 주변과 소통한다. 그러므로 한옥의 배치는 자연과 하나처럼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전통 건축은 서양과 같이 공간을 기계처럼 맞물리게 하여 기능적이고 상호 의존적으로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성격이 확실히 부여되지 않은 다목적의 실들을 배치하는 까닭에 서양의 경우처럼 요소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발생되는 공간감은 약한 경우가 많다. 우리 건축에서 공간은 허(虛), 즉 틈새, 비움 등을 통하여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으며, 눈에 감지되지 않는 공간 또한 실재의 공간만큼이나 살아 생생한 것으로 고려되곤 한다. ‘이응노의 집’에서 소전시실들의 배치에서 오는 공간과 건축의 연출은 이런 특징으로써 설명할 수도 있다.

  • 이응노의 집 외부 전경-자연 경관(산, 수면위에 떠있는 연잎) 이미지

    외부 공간을 언급하며 연밭을 빠트릴 수는 없다. 연밭은 기존의 논을 탈바꿈한 것으로 그 구축과 채용 및 이용 방식에 종교적 의도는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미학적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연밭은 물을 담고 있어 거울을 사용할 때처럼 공간이 확장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경관 요소가 되고 있다. 물 속에 하늘, 구름, 산 등의 이미지를 거꾸로 반사시키며 변화하는 기상 등 환경 조건에 따라 명도, 채도 등의 미묘한 변화를 체험하게 하여 불멸의 대상인 듯한 자연 역시 범상(凡常)함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잔 미풍에도 수시로 흔들리고 변하는 이미지는 이미 허상으로 비치며 불규칙성을 증폭시킨다. 연못은 동서양 공히 살아 움직이는 자연처럼 취급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서양에서는 변덕과 무상함의 구현에 열중했던 바로크 풍의 정원과 도시, 건축물에 즐겨 채용한 요소이다. 조성룡은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꽃을 피우는 연을 연못에 심고 그 안에 산책로와 데크를 설치함으로써 만연된 불규칙에 제동을 걸고 허상의 세계에 실재 세계의 대상물을 투입한다.

    ‘이응노의 집’에서 건축물이 작게는 앞의 마당, 연밭과 들판, 멀리는 더 큰 스케일의 자연,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은, 전통적인 건축 사상과 우주관을 잘 반영한 것이며 오브제 중심의 건축보다 경관적이고 다분히 생태를 고려하고 있는 건축이라고 판단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런 사고의 일환으로 조성룡은 주변의 수덕사, 수덕여관, 선미술관, 그리고 바로 옆의 초가를 ‘이응노의 집’과 연결함으로써 소멸 가능성이 있는 땅의 역사성을 되살려 기억을 되살리고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하며, 변화된 성격과 전이, 그리고 그 원천이 되는 흔적을 찾아 되살리는데 주력한다. 전통적인 건축 사상의 맥은 그가 경관, 자연, 역사를 아우르는 주요한 기저가 된다.

  • 이응노의 집, 야경경관 이미지

    조성룡의 말을 빌어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고르자면 ‘풍경의 회복’이다. 그는 홍성,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내포 신도시가 전국에 미칠 거대한 물리·환경적 압박과 필연적으로 도래할 파괴 현상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풍경의 조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 시설과 현대의 문화 및 문명 자원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유대 장치로서 ‘이응노의 집’의 필요성을 같이 의식하고 있다. 아울러 쉽사리 소멸되곤 하는 땅의 역사성, 장소성,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 나가고자 기본 구조를 구상하며 구축한다. 이전의 작업에서 그가 거의 죽은 건축물과 환경에 성공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듯이 이번 작업은 이응노를 중심으로 홍성 중계리의 역사적인 변화와 전이, 흔적을 찾아 장소의 기억을 되살리고 활성화시키고자 진행되는 과정의 하나가 되었다.

    김원식(건축비평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