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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來路홍성군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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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성삼문 사진
홍성의 위인 성삼문1418~1456
  • 매죽헌
  • 생애 1418~1456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절신(節臣)으로 꼽힙니다.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槿甫)·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충문(忠文) 아버지는 도총관 승(勝)입니다. 외가인 홍주(洪州) 노은골에서 출생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묻는 소리가 3번 들려서 삼문(三問)이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435년(세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8년에 식년시에 응시, 급제하였습니다. 집현전학사로 뽑힌 뒤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만들 때 정인지·신숙주·최항·박팽년·이개(李塏) 등과 더불어 이를 도왔습니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당시 요동에 귀양 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黃瓚)에게 13차례나 왕래하며 정확한 음운(音韻)을 배워오고, 명나라 사신을 따라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오는 등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1455년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성삼문은 아버지 성승과 이개, 하위지, 유응부, 박팽년, 유성원 등과 함께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하여 능지처형(凌遲處刑)을 당했고 집안도 멸문(滅門)의 참화를 당했습니다.

1691년(숙종 17)에 관직이 회복되었으며, 1758년(영조 34)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문(忠文)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숙종 2년(1676)에 이량과 호서의 유림 등이 선생의 옛 집 근처에 사당을 세우고 사육신을 같이 모실 것을 청하자, 나라에서 녹운서원이라 하였고, 뒤에 노은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고, 후에 유생들이 사육신의 위패를 모시고 노은단이라고 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1954년 홍성 고적현창회에서는 제단을 보수하고, 노은단수호위원회에서 음력 9월 16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